
오늘 밤, 디카페인으로 남겨둔 시간
사실 고백하자면,
이 커피는 케이스가 예뻐서 집으로 데려왔다.
은빛 캔에 파란 선 하나.
괜히 부엌 선반에 올려두면
“괜찮은 하루였어?” 하고 묻는 것 같아서.
디카페인이라는 말은
왠지 맛이 덜할 것 같고,
마음이 심심해질 것 같았는데
의외로 이 커피는 아주 조용히 깊다.
오늘의 선택: 모카포트
저녁이 되면
마음은 커피를 원하고
몸은 잠을 원한다.
그럴 때
모카포트에 이 디카페인을 채운다.
꾹 누르지 않고, 평평하게.
불은 중약불로, 서두르지 않게.
보글보글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
하루의 끝도
이렇게 천천히 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.
맛의 기록
• 첫 향: 고소하고 부드럽다
• 첫 모금: 자극 없이 정직하다
• 끝맛: 씁쓸함 대신 정돈된 여운
‘디카페인이라서’가 아니라
디카페인이라서 좋은 커피라는 생각이 들었다.
커피가 남기는 것
이 커피를 마시고 나면
머리는 맑고
마음은 조금 느려진다.
그리고 다 마신 캔은
아마도 계속 우리 집에 남아
설탕을 담거나
원두를 담거나
아무것도 담지 않은 채
그냥 예쁘게 있을 것 같다.
오늘 밤,
커피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있다는 것.
그 사실만으로도
하루가 조금 다정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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